Focus

더 나은 ‘나’로 성장하기 위한 글쓰기

2011-07-15 교육


후마니타스 칼리지 릴레이 인터뷰 ②
? 기초교과 글쓰기 김수이 교수

어려운 글쓰기를 재미있는 글쓰기로 바꿔
500자도 쓰기 힘들었던 글, 학기말에는 2000자도 ‘거뜬’

후마니타스 칼리지(Humanitas College)를 준비하고 강의에 참여한 기획자와 교수를 만나 그간의 성과와 계획을 들어보는 릴레이 인터뷰를 준비했다. 그 두 번째로 기초교과 글쓰기 디렉터, 김수이 교수를 만났다.

글쓰기는 기존 교양교과에도 개설되었던 과목이기에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글쓰기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글쓰기는 교양교육의 기초 중의 기초로, 모든 대학교육의 가장 기본이 되는 기초체력에 해당하는 과목입니다. 우리 학교에서도 이미 7년 전부터 개설·진행되어왔고, 공통교재도 이미 2권이 발간되었습니다. 글쓰기는 과목의 성격상 전혀 새로운 학설이 등장하거나, 시류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본질이나 정체성은 동일합니다. 다만, 접근 방법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기존의 대학 글쓰기 교육은 기능주의적이고, 글쓰기의 형식적인 요건과 기술적인 요건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글쓰기는 기능적으로 구성이나 체계 같은 이론을 앞세우기보다, 삶에서 자신에게 시시각각 다가오는 문제를 고민하면서 글쓰기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을 꾸몄습니다.

수업은 1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 1(나를 위한 글쓰기)’과 2학년 때 이수하는 ‘글쓰기 2(세계를 위한 글쓰기)’로 나뉩니다. 기존의 대학 글쓰기의 일반적인 접근 방식과 달리, 나, 성찰, 치유, 타자, 세계 등 강조점이 분명합니다. 대학생들에게 필요한 내적 성장의 과정과 글쓰기의 단계를 유기적으로 일치시킨 것입니다. 대학 교육, 특히 교양교육은 ‘어떤 인간이 되어서 어떻게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인가’를 다룹니다. 이런 것은 주입식 교육으로 가르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 과정을 학생들이 자신에 대한 글을 써보면서 생생하게 체험하고 주체적으로 내면화할 수 있게 하고자 합니다.

도식화된 이론을 먼저 주입하는 기존의 글쓰기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 자신의 체험에서 글쓰기를 시작하는 실천적 교육이라는 점이 독특합니다. 이런 시도를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우리나라 학생들은 초·중·고등학교에서 글쓰기를 입시의 일환으로 교육받습니다. 목적이 너무 뚜렷해서 글쓰기의 즐거움과 필요성을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보람을 느끼고 내적 성장을 이루는 글쓰기를 경험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셈입니다. 글쓰기 훈련을 본격적으로 받지 않은 신입생들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 글쓰기를 많이 해보지 못한 데서 오는 자신감 결여에 시달립니다. 한 편의 완성된 글을 써낼 수 있는 집중적인 역량 또한 부족합니다.

‘글쓰기 1’ 과목은 그동안 입시 공부 때문에 차분히 돌아보지 못했던 자기 삶에 관한 이야기, 즉,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야 하는가’ 등을 주제로 편안하고 솔직하게 글로 써보도록 가르칩니다. 쉬운 것 같지만, 그것이 때로는 치열한 고민과 고통스러운 글쓰기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 글쓰기 교육은 딱딱한 이론을 가르치기기보다는, 무엇을 쓸 것인지 내용과 방향을 먼저 제시합니다. 사실 전문 작가나 시인들도 한 편의 문학작품을 만들 때 처음부터 구성이나 체계를 완벽하게 갖추는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단계부터 시작해 완성도를 높여나갑니다. 그런 뜻에서 ‘글쓰기 1’은 학생들이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본격적인 글쓰기에 들어서는 진입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만)의 생각을 쓰는 일이므로, 다른 무엇보다 먼저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수업시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했을 텐데,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강의에 앞서 ‘학생들이 과연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을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기우였습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 글쓰기의 특징의 하나는 수강생이 20명으로 한정되었다는 것입니다. 교수자와 학생, 학생과 학생들이 더 밀착되고 가족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모르는 사이여서 눈치도 보고 두려움을 갖기도 했지만, 20명이 모인 소규모 커뮤니티의 친밀감이 강화되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다른 학생들이 ‘아! 저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구나’, ‘아무 문제가 없구나’, 심지어 ‘멋지다!’라고 느끼게 됩니다. ‘나의 콤플렉스, 내가 겪은 삶의 행복과 어려움을 남한테 이야기한다는 게 꽤 괜찮은 일이구나’라고 학생들이 깨달으면서, 글쓰기의 진전과 상승작용이 일어납니다. 나중에는 많은 학생들이 부모나 형제, 친한 친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습니다. 치유, 성찰, 성장,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 등이 그 이야기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듭니다. 이게 바로 글쓰기의 힘입니다. 기존 글쓰기 과목의 수강생은 30명이었는데, 10명이 줄어들면서 생긴 양적 변화가 그 이상의 커다란 질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많은 교수님들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글쓰기 1’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오프라인 강의와 온라인 합평(合評)을 함께 진행했습니다. 학생들이 온라인 카페에 글을 올리면 다른 학생들과 교수자가 댓글을 다는 방식으로 의견을 교류하는 방식입니다. 강의 시간은 일주일에 3시간이지만, 온라인 합평을 진행하면 실제로는 2배 이상으로 늘어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인터넷 상에서 글을 쓰면 속어나 비문, 다듬어지지 않은 긴 문장을 쓰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인터넷 용어는 자제하고, 문장을 다듬고, 비문을 쓰지 말라는 원칙을 지키라고 당부합니다. 물론, 인터넷 용어가 가지는 유익함도 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의 기본 역량을 갖춘 후에 활용해도 늦지 않기 때문에 글쓰기 강의에서는 배제합니다.

한 줄의 문장을 완성하는 능력은 사실, 한 편의 글을 제대로 완성하는 능력과 다르지 않습니다. 문장 한 줄을 제대로, 올바르게 쓰기 위해서는 문법 규칙, 생각과 행위의 주체, 세계와 사물을 대하는 방식 등에 대한 총체적인 사고력이 필요합니다. 모든 글은 한 줄의 문장에서 시작하므로, 한 문장씩 완성하면서 학생들에게 차츰 긴 글을 쓰게 합니다. 한 편의 글에 필요한 몇 개의 단락을 각각 한 문장으로 쓰게 한 후 길이를 늘려가면, 글의 구성과 체계에 대한 문제의식도 자연스럽게 싹트게 됩니다. 실제로 학생들은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3월 초에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그 사이 발전한 게 느껴진다”라고 얘기하곤 했습니다.

글쓰기 강의에서 한 학기 동안 쓴 글을 모으면 학생들은 자신만의 작은 문집을 한 권 갖게 됩니다. 과제를 제출하고 강의를 ‘끝내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소중하고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쌓아두는’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글을 쓸 때는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람 있고, 뭔가 이루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댓글을 다는 방식으로 온라인 합평을 진행했다고 하셨는데, 온라인 합평으로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온라인 합평은 일반 블로그나 카페의 댓글들과는 수준이 좀 다릅니다. 다른 학생의 글을 정독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일종의 비평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글쓰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글을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이 안목이 곧 비평 능력입니다. 수업과 함께 온라인 합평을 하면서, 학생들은 글을 쓰는 창작 행위와 글을 읽고 평가하는 비평 행위를 동시에 경험합니다. 이 과정에서 쓰기와 비평의 능력이 함께 길러지게 됩니다.

온라인 카페는 오프라인 강의실에서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열린 장(場)입니다. 20명의 학생들과 교수가 서로 교감하면서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생들이 가진 큰 고민의 하나는 소속감을 느끼지 못해 외롭고 혼란스럽다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일체화된 집단에 속해 있던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와서 수십, 수백 명의 낯선 이들과 강의를 듣고, 또 각자의 일정대로 생활하면서 소외감에 사로잡힙니다. 그런데 글쓰기는 수강 인원이 20명밖에 되지 않는데다, 온라인 이야기 공간까지 마련되어 있어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낀다고들 말합니다. 온라인 합평을 통해 글쓰기 실력이 진전된 것뿐 아니라, 내적 안정감을 얻고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효과도 얻은 것입니다.

지난 한 학기를 돌아보고, 변화된 글쓰기 교육을 통해 이룬 성과를 평가해주십시오.

학생들이 가장 많이 얘기하는 소감이 “학기 초에는 500자도 쓰기 힘들었는데, 학기 말에는 2,000자도 쉽게 느껴지더라”는 것입니다. 가령 첫 주에 100자를 쓰고, 서서히 분량을 늘리면 학생들이 저항감을 크게 느끼지 않고 잘 따라옵니다.
 
‘글쓰기 1’이 지향하는 것은 학생들이 단순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자기 이야기를 함으로써 학생들이 스스로 무엇을 얻는가가 중요합니다. 가족사라든가,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내면의 갈등이나 변화 속에서 경험한 것들, 특히 고통스러운 부분을 표출하는 행위는 치유의 효과가 있습니다. 실제로 이것은 글쓰기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속성입니다. 아주 고통스럽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일들, 상처들을 글로 쓰면 생각이 정리되고 객관화되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대학생으로서, 더 나아가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나’라는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자아를 만들어갑니다. 더 이상 부모나 선생님께 기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립적인 주체, 자립적인 자아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좀 더 나은 인간으로서 세계와 대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검토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세계와 관계 맺는 시선과 체력을 갖추게 됩니다. 세계는 자동으로 개인을 세계에 포함시키지만, 개인은 자동으로 세계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내가 어떤 특이성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세계를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한 글쓰기’가 그 조력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한 학기 강의를 마친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이번 학기 글쓰기 강의는 개인적으로 아주 즐겁고 보람이 있었습니다. 학생들한테서 들은 얘기인데,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재미없고 어렵고 싫다는 생각만 든다. 그런데 후마니타스 칼리지 글쓰기 강의를 들으면서 글쓰기가 이렇게 재미있고 뿌듯한 일인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끼고 교수들도 즐겁게 가르치는 수업이 되고 있습니다. 2학기에 ’글쓰기 1‘을 듣는 학생들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을 떨치고, ‘나에 대해서 솔직하게 한번 이야기해보겠다’, ‘나도 잘 모르는 나를 알아보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정리해보겠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수업을 들으면 더 많은 것을 배워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내년에 선보일 ‘글쓰기 2’는 지금 한창 교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에 대한 문제를 넘어서 타자들의 삶, 우리가 사는 세계를 자신의 언어로 해석하는 본격적인 글쓰기 훈련이 될 것입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세계와 진정으로 겨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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