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뉴스

제목

유토피아의 귀환: 폐허의 시대, 희망의 흔적을 찾아서

2017-12-08조회수 3051
작성자
이명호 외 지음

미래가 보이지 않는 시대, 유토피아를 복원하다



이명호 외 지음 | 2017년 12월 8일 출간
152mm*225mm | 328쪽 | 무선 | 18,000원
ISBN 978-89-8222-556-7








지금과 다른 세상을 꿈꾸는 게 쉽지 않은 현실이다. 자본주의와 맞선 체제는 이미 사라졌고 신자유주의의 위력은 세계를 압도한다. 소비적 쾌락에 사로잡힌 현대인은 또 다른 미래의 가능성을 비웃는다. 게다가 기후변화, 경제적 불평등, 공동체 파괴, 폭력과 테러 등으로 인해 미래는커녕 현재조차 그 지속성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독일의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이 지적했듯이 유토피아의 포기는 역사 창조의 의지는 물론 역사 이해의 능력의 상실로 귀결된다. 인류 문명의 역사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유토피아의 꿈을 붙잡아야 한다. 현실 바깥에서 현실을 비판하고 교란하는 유토피아 상상의 복구가 절실하다.

유토피아의 추구는 인간존재에 대한 성찰에 기초한다. 인간의 본성, 잠재력, 욕망에 관한 깊은 인간학적 이해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이러한 유토피아 담론에서 문학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소외와 분열을 넘어 존재의 본향을 좇는 인간의 근원적 소망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유토피아 담론의 미래는 문학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학에 담긴 유토피아 상상을 되짚어보기 위해 경희대학교 외국어대학의 문학 전공 교수들이 힘을 모았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부터 박민규의 『핑퐁』까지 동서고금의 유토피아문학을 엄선해 유토피아 상상의 복원을 시도한다. 이 책 『유토피아의 귀환: 폐허의 시대, 희망의 흔적을 찾아서』는 여섯 개의 주제(사유재산과 계급 불평등, 과학과 기술 문명, 무위와 자연, 감시와 자유, 몸과 욕망, 폭력과 공존) 아래 25편의 유토피아문학을 다룬다. 작품에 대한 심도 깊은 비평을 담았으며 소설의 줄거리와 작가도 친절하게 소개한다.

유토피아문학의 전형은 당대 현실을 비판하고 대안 사회를 급진적으로 상상한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이명호)는 16세기 영국 사회를 풍자하면서 화폐와 사유재산이 철폐된 공산 사회를 제시한다. 에드워드 벨라미의 『뒤돌아보며: 2000년에 1887년을』(강수진)과 윌리엄 모리스의 『유토피아에서 온 소식』(오봉희)에서도 19세기 미국과 영국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한 민주적 사회복지 국가와 실용 사회주의가 등장한다. 허버트 웰스의 『모던 유토피아』(김상욱)는 다소 색다른 대안을 꿈꾼다. 전통적 유토피아의 집단적 공산 체제가 아니라 개인과 국가가 상생하는 공유 경제를 해결책으로 내놓는다.

유토피아는 과학기술의 발전 위에 세워지기도 한다. 자급자족의 풍요로운 공간인 잠수함 노틸러스 호(쥘 베른의 『해저 2만리』(오정숙)), 첨단 과학을 자랑하는 유토피아 행성인 화성(A. 톨스토이의 『아엘리타』(김성일)), 과학기술로 이룬 안정된 공동체(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김상욱))가 이상 사회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들 사회의 화려함과 완벽함 이면에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 즉 디스토피아가 자리 잡고 있다.

디스토피아 문학의 정전은 조지 오웰의 『1984』(전소영)다. 경찰국가인 오세아니아에서 인간의 소외는 극에 달한다. 예브게니 자먀찐이 『우리들』(문준일)에서 묘사한 ‘단일제국’은 이성이 지배하는 집단주의적 통제 사회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는 『지하생활자의 수기』(안지영)에서 사회주의 유토피아론의 합리적 이기주의를 디스토피아로 규정한다. 최인훈의 『회색인』(김종수)에서는 민주주의와 자유가 체화되지 못한 한국 근대사의 질곡이 다름 아닌 디스토피아다.

디스토피아 담론은 다양한 폭력성을 고발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욕망과 폭력의 광기(알베르트 산체스 피뇰의 『차가운 피부』(권미선)), 사적 영역 내에서의 폭력과 폭력을 피할 수 없는 잔혹한 세계(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남상욱)), 이상향에 숨어 있는 지배 이데올로기적 속성(이청준의 『이어도』(이선이)), 타자를 말살하는 유럽 문명과 이를 모방한 후진국의 군부독재(리카르도 피글리아의 『인공호흡』(박정원)),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현대사회 시스템(박민규의 『핑퐁』(김종수))을 암울하게 그려낸다. 그런데 디스토피아는 보기와 달리 유토피아에 적대적이지 않다. 디스토피아적 외피 속에서 유토피아를 갈망한다. 추락의 끝에서 새로운 도약을 꿈꾼다.

일반적으로 유토피아는 정치경제 제도의 완비를 통해 구현된다. 다시 말해 문명의 문제점을 문명의 새로운 제도로 해결한다. 하지만 문명을 벗어나 문명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유토피아문학도 있다. 바로 동아시아의 도교적 전통이다. 문명이 닿지 않은 목가적인 농촌 공동체(도연명의 『도화원기』(김경석)), 원시적인 인성의 순박함과 선량함(선총원의 『변성』(김경석)), 중국의 전통과 조우한 현대적 유토피아(거페이의 『복사꽃 피는 날들』(김순진)), 비판이 존재하지 않는 용궁(다자이 오사무의 『우라시마』(한경자)) 등이 도교적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한편 쿠바의 소설가 알레호 까르?띠에르의 『잃어버린 발자취』(황수현) 역시 서구 문명이 도착하기 전의 원형적 라틴아메리카에서 유토피아를 찾는다. 그런데 문명의 거부가 동아시아적 유토피아의 전부는 아니다. 대동 사회와 왕도 정치를 통해 이상향을 추구하는 유교적 전통도 있다. 율도국이라는 이상국을 그린 허균의 『홍길동전』(이선이)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세상을 바꾸지 않고 인간을 바꿔 유토피아를 구현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어슐러 르 귄의 『어둠의 왼손』(이명호)은 성이 없는 사회로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꾸고,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김영임)는 기쁨과 괴로움을 초월하고 죽음을 넘어서는 인류의 새로운 종을 상상한다. 그리고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나무』(박규현)를 통해 일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다르게 보기’를 제안한다.

이렇듯 유토피아문학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저마다 꾸는 꿈이 다르고 꿈을 전하는 방법도 다르고 서양과 동양이 다르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이들 모두 ‘지금 여기 없는 좋은 곳’ 유토피아를 욕망한다.

『유토피아의 귀환』은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세계문학 연구총서의 제1권이다. 이 총서는 경희대학교 외국어대학 소속의 문학 전공 교수들로 구성된 ‘세계문학 독회모임’에서 발간한다. ‘세계문학 독회모임’은 인간, 삶, 세계를 트랜스내셔널한 관점에서 성찰하는 기획물을 계속 출간할 계획이다.

 

파일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