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교양교육은 본격적인 대학 교육의 시발점

2011-06-22 교육



후마니타스 칼리지 릴레이 인터뷰 ① - 도정일 대학장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준비하고 강의에 참여한 기획자와 교수를 만나 그간의 성과와 계획을 들어보는 릴레이 인터뷰를 준비했다. 그 첫 번째로 도정일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을 만났다.

후마니타스 칼리지(Humanitas College) 출범 선포가 어제 일 같은데, 어느새 첫 학기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설립위원장으로, 대학장으로, 교수님으로 누구보다 바쁘게 보내셨는데요. 근황은 어떠신가요?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사실상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본격적인 교양교육 체계이기 때문에 아직도 준비하고 보완할 부분이 많습니다.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출발했다기보다는 절반가량 준비된 상태에서 학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운영 면에서 어느 정도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습니다. 지속적으로 개선할 부분을 파악하고 수정하며 학기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은 후마니타스 칼리지 출범 후 2년 간은 기틀을 잡기 위한 준비 및 보완 작업이 필요하겠다고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정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비가 완료되는 시점을 내년 2월 말로 내다보고 있어요. 2012년도 봄 학기부터는 완비된 상태에서 보다 안정적이고 체계적으로 운영되리라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기 중에는 물론 방학 기간에도 강의와 교재 준비, 행정 업무 정비 등으로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세계를 위한 경희의 도전에 동참해준 후마니타스 칼리지 기획자를 비롯한 교수, 교직원 여러분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첫 학기였던 만큼 걱정했던 점이나 아쉽고 부족했던 부분도 적지 않았을 텐데요.

가장 큰 걱정은 신입생들이 중학교과에서 다루게 되는 내용이나 강의 방식을 따라올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중핵교과(Core Courses)와 시민교육, 글쓰기, 영어, 배분이수, 자유이수 등의 교과로 구성되는데, 중핵교과는 읽기와 쓰기, 질의응답과 토론이 병합된 강의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일주일에 50여 페이지 분량의 글을 읽어야 해요. 그런데 몇 페이지 넘어가면 학생들이 집중하지 못하고 읽어내지 못합니다. 단문에 길들여져 있어 긴 시간 집중하며 사고를 요하는 독서에 익숙하지 않아요. 중등교육 과정에서 독서를 많이 하지도 못했고 사고 훈련보다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 입시교육 위주로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죠. 예상대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중핵교과 1학기 수업 <인간의 가치 탐색>을 진행해본 결과 ‘충분히 따라올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학생들 개인 편차는 있습니다. 학생 중 50%는 잘 따라왔고, 30%는 따라오는데 어려워했습니다. 20%는 아쉽지만 과락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과제를 받고 시험을 치러보니 40% 정도의 학생이 주어 동사의 불일치는 물론, 논리적으로도 뒤죽박죽인 비문을 쓰고 있었어요. 그러나 점차 더 나아지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학 교육을 수료한 이들이 갖추어야 할 교양 수준은 어느 정도여야 할까요?

대학 교육을 받았다면 본인의 전공 분야를 제외한 인문, 사회, 종교 등 다양한 분야의 텍스트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교양 수준은 갖추어야 합니다. 특히, 대중을 위해 저술된 책이라면 대학 전공을 불문하고 광범위한 독서가 가능해야겠죠. 그 같은 독서 행위가 이루어졌을 때 문화적 역량을 지닌 시민으로서 한 사회가 만들어내는 지적, 예술적 창조물들을 향유할 수 있고 사회가 창조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대학에서 교육받은 이들의 책임입니다. 연극, 음악, 출판, 영화 등 다양한 저작물과 예술 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독자와 청중이 늘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문화 후진국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본격적인 지적, 예술적 저작물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어떠한 창조적인 결과물도 기대할 수 없어요. 후마니타스 칼라지의 목표 중 하나는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해 어떤 직업을 갖든 평생 그 학생을 지탱해주는 기본적인 능력을 키워주는 데 있습니다. 인문학과 교양교육은 모든 학문의 기초입니다. 자연과학이 기초과학을 중시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각종 매체에서 인문학과 교양교육을 강화한 경희대학교의 과감한 정책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 첫 번째 학기에 대한 학생 반응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학생들 반응은 천차만별이지만 대체로 좋은 편입니다. 플라톤, 칸트, 루소, 밀, 공자와 맹자 등 거대한 문화적 유산을 만들어준 대가들의 글을 읽는 과정은 굉장히 소중한 경험입니다. 당장은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읽고 나면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몇 년 후에는 자랑거리가 될 수 있겠지요.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받은 교육과 공유의 기억으로 자부심을 느끼게 되리라 믿습니다. 학생들 대부분 중고등학교에서는 대학 입시에 집중하고, 대학에서는 취업 준비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정신의 반신불수가 되어 대학에 올라온 학생을 온전한 지성인, 지식인으로 성장시키는 일은 대학 교육의 가장 큰 과제이자 책임이에요.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통해 우리 학교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력, 집중력, 판단력, 창조적 상상력을 기르고 강화하는 데 도움을 받았으면 합니다. 외부에서도 우리 학교의 혁신적인 교양교육 체계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대학 교육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불안감과 위기의식을 느끼며 교양교육의 변화를 바라고 있었지만 어떤 대학도 선뜻 용감하게 나서지 못했어요. 우리 학교의 노력과 결실을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말씀해주신 대로 중고등학교에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훈련 받아온 학생들에게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재와 강의 방식은 낯선 경험이었을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참고할 수 있는 조언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대학 교육에서 1학년 과정은 고도의 자발성과 자율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학생이나 교수 모두에게 가장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내 손으로 자료를 찾아 읽고 연구한다는 자발적인 학습 태도를 훈련해야 합니다. 내가 왜 이 글을 읽어야 하는지, 지적 호기심과 지적 탐구심이 왕성하게 작동할 때 제대로 된 공부가 이루어집니다. 정보와 자료의 양이나 교육 환경은 과거 어느 때보다 좋아졌지만, 막대한 정보가 사방에 널려 있다고 해서 덩달아 교육 효과가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공부하는 이들의 자발성이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대학에서 보낸 4년을 본인에게 의미 있고 중요한 경험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1학년과 2학년 때 기초를 다져야 합니다. 

그리고 최근 신입생은 1학년 때부터 강박에 시달립니다. 학점이나 취업과 관련된 책이 아니면 마음 편히 읽을 수 없을 만큼 여유가 없어요. 그 공포에서 벗어나 대학생답게 지적 탐구의 문화 속으로 자유롭게 빠져 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교양 강의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고쳐야 합니다. 교양 강의는 출석만 채우고 대충 공부해도 학점을 받을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이 많습니다. 교양과목은 결코 쉬운 과목이 아닙니다. 본격적인 대학 교육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이번 학기에 다수의 학생이 학점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엄격하게 평가할 계획입니다. 

마지막으로 계획이 있으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번 학기에 강의한 중핵교과 읽기 교재에 이어 가을 학기에 강의할 <우리가 사는 세계> 교재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시민교육 강의 자료도 봄 학기 교재를 보충해 가을 학기에 최종판을 내놓을 예정입니다. 강의에 쓰일 텍스트를 선정하고 교재를 준비하는 일은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입니다. 특히,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내용과 품질을 중시하기 때문에 교재를 강의 목적에 맞게 정성껏 만들어야 합니다. 상당한 에너지와 공력이 필요합니다. 전반적인 시스템 정비 작업도 진행 중입니다. 향후에는 후마니타스 칼리지 강의를 동영상으로 제작하거나 판매 가능한 출판물로 제작해 더욱 많은 시민들과 공유할 계획도 있습니다. 가을 학기에 직접 강의를 하게 될지는 아직 미정입니다. 지난 학기에는 예상보다 수강신청 학생이 많아 부득이 신입생과 재학생 400여 명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게 되었지만, 대형 강의는 읽기와 쓰기, 토론을 병행해야 하는 중핵교과의 특성상 지양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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